책과 논문

헬렌 한프, <채링크로스 84번지>

밭 벼 2023. 7. 10. 00:20

헬렌 한프, 2021, 궁리, <채링크로스 84번지>

 

채링크로스 84번지

영국의 헌책방 거리로 유명한 채링크로스가의 한 서점과 뉴욕의 한 가난한 작가가 20년 동안 책을 매개로 나눈 편지들을 엮은 책. 작고 아담한 이 책은,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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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전후, 영국이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의 이야기이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헌책을 사모을 정도의 취미를 유지해온 미국의 작가(드라마 극작가로 수입을 유지했다) 헬렌 한프는 영국 채링크로스 84번지의 마커스 서점에 책을 주문하는 편지를 쓴다.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책을 주문하고, 책을 보내고, 책이 없어 미안하다고 편지하고, 더 열심히 일할 것을 채근하며 20년동안 대서양을 넘나든다. 

 

헬렌 한프는 지성을 갖춘 미국인 여성으로 그의 편지는 유머와 사랑이 넘쳤다. 점잖은 영국인이자 마커스 서점에서 종업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프랭크는 예의바르고 전문적이었다. 둘 사이의 편지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책을, 비극적인 전쟁을 마친 세상을 사랑하는 모습이 들어 있다. 

 

편지는 마커스 서점의 주인 프랭크가 질환으로 사망하면서 마무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헬렌 한프 자신이 편지를 엮어 책으로 출판한 이 책은 작가인 헬렌 한프 본인의 유일한 성공작이었다. 프랭크의 선물이었을까 싶다. 헬렌 한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프랭크가 죽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않아 마커스 서점도 문을 닫았다. 지금 채링크로스 84번지에는 마커스 서점이 없다. 무슨 상관이랴. 나는 중고 서적을 모으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마커스 서점 식구들을 선명히 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