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논문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밭 벼 2023. 7. 1. 20:59

AI 윤리 레터 시작했다고 책에 대한 기록도 소홀히 하게 되었지만, 여느 때보다도 활발히 독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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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인공지능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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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오늘 기록으로 남길 책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입니다. 

 

사사키 아타루, 2012, 자음과모음,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 ‘사사키 아타루’. 그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비평가로 자리 잡은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의 뒤를 잇는 사상가로 인정받고

www.aladin.co.kr

 

모 선배들이 재미있다고 추천해줬던 듯 한데, 좋다고 하면 안 좋아 보이는 모난 마음을 갖고 있어서 읽어볼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 올해 여름의 초입에 책을 읽었고 2주 정도를 황홀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는 반복한다. 짧게 반복한다. 그의 글은 논증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을 반복한다. 잊고 있었던 것. 무의식을 마주할 수 없어서 흘려보내고 피하고 잊었던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도록. 반복 끝에 마음에는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일어난다. 

 

사사키 아타루의 혁명은 읽기에서 시작한다. 위대한 혁명은 모두 읽는 데서 시작됐다. 루터는 성경을 읽었다. 95개조 반박문을 쓰고 성경을 번역했다. 그의 혁명은 성경을 읽어낸 데에서 시작했다. 읽어버렸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 없었다. 

 

무함마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40이 넘은 그가 천사에게 목이 졸리는 다툼 끝에, 읽는다. 문맹이었는데도! 신은 인간을 축복하여 붓을 주었고, 붓을 든 인간은 신의 언어를 기록해왔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읽지 않을 뿐이다. 이슬람교에서 세상의 멸망은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코란을 기억하지 않게 되었을 때 찾아온다. 

 

여름의 다섯 밤동안 썼다는 그의 글은 덕분에 나의 여름밤은 황홀하다. 

아름다운 글이고 기꺼이 여러 번 읽겠다 생각한다. 

 


  • p.168. 반대로 무척 단정하지 못한 형태로 "내가 말하는 것이 성서이고, 내가 말하는 것이 코란이고, 내가 말하는 것이불전이다"라는 정말 꼴사나운 모습에 자족한 채 지칠 줄을 모릅니다. ... 그러므로 텍스트와 자신이 구별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근거나 전거는 모두 자신입니다. 준거는 자신입니다. ... 거기에는 외부성과 타자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 p.172. 이리하여 "읽을 수 없는 것을 읽는다"는 고난과는 반대인 "어차피 읽히는, 읽히는 것밖에 읽지 않는, 읽지 않아도 이미 안다며 얕보고 읽지 않"는 안일함이 죽음을, 한없는 죽음을 낳는 것입니다. 루터나 무함마드와 달리 아무것도 낳지 않는, 그 뒤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그저 무익한 대량의 죽음을 말이지요. 

 

  • p.276. 우리의 싸움은 0.1퍼센트가 살아남는다면 이기는 싸움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0.1퍼센트라도 놓치면 지는 겁니다. 즉 우리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p.297. 벤야민이 말했습니다.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라고요. 발소리를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구의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발소리를 내는 것조차 거부당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발소리를 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