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논문

대니얼 서스킨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밭 벼 2023. 2. 11. 16:25

대니얼 서스킨드, 와이즈베리, 2020, <노동의 시간은 끝났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첨단 기술과 인공지능, 정보화에 따라 앞으로는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업무 영역이 어느 때보다 깊이, 그리고 서서히 대체될 전망이다. 저자의 10년 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과학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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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로 시끌벅쩍한 이 시점에 읽게되어 새삼스러웠던 책. 지금처럼 일자리 걱정으로 미래가 흉흉했던 적이 있었나. 기술에 의한 마찰적, 구조적 실업이 발생할 때에 사회는 재교육을 통해 '더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거라 설득한다. 새로 등장하고 있는 직업이 임금도, 명예도 더 좋다면서.

 

흥미롭게도 chatGPT의 시대에는 이런 설득이 잘 안먹히는데, 그것이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직업군이 SW 개발자부터 법조인까지 다양할뿐더러 소위 '명망 있는' 직업이기 때문. 기술은 인간의 '루틴'한 업무를 대체하고, '루틴'을 빼앗긴 인간은 더 큰 경쟁 압력을 받는다. 덕분에 세상이 시끄럽다. 그래서 정말이지 이번에는 다르다!!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 인가?

 

미래의 도래를 논할 때는 침착해지는 게 좋다. 그의 머릿속 새로운 경제 체제를 설득하기 위해서 서스킨드는 먼 미래를 외삽한다. (이 '외삽'이라는 표현을 함께 세미나를 하는 누군가가 썼는데, 적확하다 생각한다.) 외삽된 먼 미래는 극단치를 제거하지 않은 선형 모델처럼 우리의 이해를 왜곡해 기술이 추동하는 이 변화를 피치못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침착하자. 인간의 (임금)노동이 기술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기 한참 전이다. 무엇보다 그런 미래가 도래하기 전에 지구가 먼저 사라질 지경이다.

 

책은 기계의 생산력이 인간의 그것을 능가하고 동시에 가격 역시 낮아져 인간 노동력이 시장에서 그 가치를 잃게된, 임금노동의 소득 재분배가 사라진 어떤 상태를 상정한다. 임금노동 없는 공정한 분배가 가능한가?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대중에게 설득력이 떨어지니 조건부 기본소득을 하자. 소득과 전통적 자본에 대해서 더 강하게 과세하자.... 등등. 침착하자. 결코 매끄럽게 해결될리 없는 불평등 문제로 사회가 동강나는 게 먼저일 지경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잊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끄럽게 도래한 미래를 맞이하는 이 책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술을 둘러싼 인간의 정책 환경은 결코 무균실이 아니라서 기술은 자체적인 진화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발전은 오직 전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제한적 상황에서만 정당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