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논문

대런 바일러,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밭 벼 2023. 2. 5. 20:27

대런 바일러, 2022, 생각의힘,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여기, 21세기 최악의 인권 유린을 파헤친 책이 출간되었다. 중국이 첨단기술의 감시 네트워크를 구축해 수많은 사람을 억류하고 착취해온 참혹한 현장을 기록한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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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라니 SF 소설같다. 안타깝게도 책은 동시대를 담았다. 극한의 폭력에서 겨우 도망친 사람들의 이야기. 그곳에서 부당하게 감금, 학대당하고 착취당하며, 살아 도망친 후에도 치밀어 오르는 죄책감과 모멸감에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언제나 현실은 소설보다 끔찍한 법이다. 기록하려 블로그를 열었지만 어떤 말을 더 얹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기숙사 방은 훌륭한 기숙사 방이야. 조금만 버텨, 내 마음아."
수용소 벽에 적혀있는 문장을 읽고 나의 마음은 무너져내려 엉엉 소리내 울었다. 수용소 벽에 새긴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에 나는 무어라 응답해야하나.

수용소는 '예비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모여있다. '예비 범죄'라니 당최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다.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공동체의 열망은 범죄를 '예측'하는 것으로 교묘히 대체되어 '예비 범죄'라는 폭력의 당위를 탄생시켰다. 이들이 저지른 '예비 범죄'라는 것은 정말 하찮아서, 왓츠앱을 썼거나 기도를 몇 번 했을 뿐이다. 정말 아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은 그저 위구르인, 카자흐인일 뿐이다.
수용소에 갇혀, 수용소에 끌려왔기 때문에 죄인이 되어 자유와 존엄을 잃는다.

자유와 존엄을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잠시만 나열해보자.

잘 수도, 말할 수도, 화장실에 가거나 씻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수용소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눈을 가리거나 이불로 빛을 가릴 수 없다. 모국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 머리를 박박 민다. 정부가 육성하는 기업을 위해 무급으로 노동 착취를 당한다. 늙은 부모와 젖먹이 아이를 만날 수 없다. 돼지라 불리고 수시로 전기 몽둥이질을 당한다. 낮에는 가만히 앉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종일 앉아있으니 장이 튀어나온다.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강제로 낙태당한다. 언제 이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누구에게도 이 폭력의 참상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을 배가한다. 어쩌다 외국인 기자가 찾아오면 웃으며 행복하다고 열렬히 외친다.


이 모든 폭력은 기술 덕분에 증강된다. 그렇다. 기술은 인간을 증강하는 만큼 폭력도 증강할 수 있다. 도시는 '안전 도시'를 꿈꾸며 모든 이동인구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기업은 개인정보를 당국에 제공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수용소의 CCTV는 '예비 범죄자'의 움직임을 확대해 보여준다. 수감자 번호를 입력하면 카메라는 용케 해당 수감자를 찾아낸다.

수용소에서 중국어 강의를 하게된 한 강사는 저도 모르게 "앗살라무 알라이쿰"이라 인사하고 말았다. 중국어 보통어만이 허용되는, 교실 한 칸에 수십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수용소 교실에서 말이다. "당신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 아름다운 인사에 수감자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운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하고 몰래 운다.

책을 읽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한참 고민했다.
그저 운에 불과한 나의 평화가 수용소에까지 번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p.127. "이 기숙사 방은 훌륭한 기숙사 방이야. 조금만 버텨, 내 마음아."

 

  • p.83. "아무 생각 없이 '앗살라무 알라이쿰'이라고 말했어요." 이는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을 담은 아랍어의 통상적인 인사말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학생들은 얼어붙었다. ... 몇몇 수감자들이 흐느끼며 울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노인들의 수염은 눈물에 젖어 있었죠. ... 수업 내내 전혀 뒤돌아보지 않았죠. 그저 칠판 위에 글자를 쓰고 지우기만 했어요. 

 

  • p.152.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관습이 있어요. 카자흐스탄 여성은 언제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카프를 쓰죠. 간수들은 이걸 벗기고,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어요. 하얀 머리가 드러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