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논문

장일호, <슬픔의 방문>

밭 벼 2023. 1. 24. 12:57

장일호, 2022, 낮은산, <슬픔의 방문>

슬픔의 방문

굵직한 탐사보도와 깊이 있는 기사들로 ‘바이라인’을 각인시킨 <시사IN> 기자 장일호의 첫 책을 선보인다.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꿈꾸며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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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예전엔 더했다. 아는 게 좋았고, 세상이 궁금했고, 호기심이 많았다. 알게 되었다 느끼면 기뻤다.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잊지 않기 위해 읽는다. 머리가 커져서, 세상을 잘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이 참 간사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편리하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세상이 불행함을 진정으로 몰랐던가. 세상의 불공정을 진정으로 몰랐던가.

아름다운 것만을 좋아하는 나는 불행 위에 피워낸 극한의 아름다움만을 찬미만, 그저 찬미만 한다.
그러고는 정작 얼마나 많은 것들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지.

오래도록 바라보자. 가슴 시려도 품어내자. 세상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장일호는 <슬픔의 방문>에서 그가 서 있는 위치를 드러낸다. 덕분에 나도 나의 위치를 확인한다. 내가 태어난 위치는 큰 행운이구나. 다만 행운일 뿐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마저 행운이구나.

내가 맞이할 죽음 앞에, 그리고 사는 동안 품게 될 죽음의 무덤들에 겸손하자.
이상은의 <둥글게>를 한참 들었다.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다.


  • p.65. 하굣길마다 신발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언제쯤 아가씨가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는 100만원 만큼의 미래를 꿈꿨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보다 더 큰 돈은 내 상상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 미래에는 엄마가 30만원 때문에 작아지지 않을 수 있었다.

  • p.73. 그는 내게 돈을 빌리러 온 참이었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드나들다가 회삿돈에 손을 댔다. 도박 중독이었다. ... 동생은 지난 몇 개월간 적게는 몇만원을, 많게는 수십만 원을 여러 이유로 빌려 가곤 했다. ...
    "누나, 나는 잘해 보려고 했던 일인데 매번 이런 식이야."
    나는 그 말에 아직도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를 하려 할 때 대단히 많은 벽에 부딪친다"는 점은 가난이 가진 질긴 속성이다.

  • p.85. 살아 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담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