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논문

커밋 패티슨, <화석맨>

밭 벼 2022. 10. 29. 23:12

커밋 패티슨, 윤신영 번역, 김영사, 2022, <화석맨>

 

화석맨

‘루시’보다 100만 년 앞선 인류 화석 ‘아르디’를 발견한 과학자들의 모험과 경쟁에 관한 휴먼 드라마,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생생하고 철저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www.aladin.co.kr


윤신영 에디터님이 번역한 화석맨. 벽돌책이기는 한데 뒤로갈수록 재미있어서 잠을 줄여가며 읽었다.

 


이야기는 주로 에티오피아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살면서 본 '에티오피아'라는 단어를 합친 것보다 많은 '에티오피아'를 이번 책을 읽으면서 만났다. 에티오피아는 내전 상태였고, 부족 간 갈등이 심했고, 부패했으며,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미국 정부와 긴장감이 높아졌고, 인류 최초의 인간이 국제사회에서 에티오피아의 위상을 높여줄 것을 기대했다.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려면 에티오피아의 정치공학을 연구해야했다.

복잡한 것은 학계 역시 매한가지. 학계는 다윈이 상상했던 '생명의 나무'를 꿈꿨고, 자신의 이름으로 인류의 '기원'을 찾을 수 있기를 원했으며, 인류가 침펜치보다 진화했을 것이라 기대했고, 화석발굴 현장에 가지 않아도 데이터를 얻고 싶어했다. 확고한 원리원칙을 따르는 고리타분한 인류학자 팀 화이트에게 이런 학계의 모습을 혐오했다. 학계에서 팀 화이트는 왕따였고, 팀 화이트 역시 그런 학계를 왕따시켰다.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해 팀 화이트를 필두로 한 그의 팀원들은(점차 더 많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함께 일했다) 인류 오랜 조상의 뼈를 찾기 위해 사막 한복판에서, 어깨를 나란히 붙인 채 사막 바닥을 기어다녔다. 그렇게 모래와 돌, 동물 뼈 사이에서 씨앗만한 인류의 흔적을 찾는다. 만지면 바스라질 화석을!

그렇게 팀 화이트와 그의 팀원들은 아르디를 만난다. 그리고 15년의 시간을 더 들여 아르디를 세상에 소개했다. 즉, 아르디는 15년 넘게 비공개였다. 학계가 팀 화이트를 맹렬히 비판하다 못해 아르디 자체를 무시하려 한 것도 이해가 된다. 인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열쇠가 발견되었는데 15년 간 한 팀에게만 독점적 접근권이 주어진다고 생각해보라. '인간적'으로 이건 아니지 않나.

 


책은 화석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집념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화석이 되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화석에 대한 열정은 정말 놀라운데, 화석만큼 인류의 기원을 보여주는 증거물이 없기 때문. 이들에게 화석은 과학이고, 권력이며, 진실이다. 학자들 간 역학이 어찌 되었든, 아르디는 인류학의 통념을 통렬히 깨뜨린 '과학적 진실'이다.

인류의 기원에 홀라당 빠지고 싶거나, 과학계 패러다임 변화가 흥미롭거나, 에티오피아의 정치문화가 궁금하거나, 인류 진화에 대한 나의 지식이 이미 화석화된 과거의 것이 되었음을 깨닫고 싶은 분들은 매우 재미있게 읽을 듯 하다. 나 역시 그렇게 되었으므로.

 


 

p. 205. 하지만 모든 게 금세 확실해졌다. 이것은 초기 인류에 관한, 딩크네시 이후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 화석은 루시처럼 혁명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루시에 대해서조차 다시 쓰게 만들었다.

pp. 413~414. 현생 유인원은 우리의 공통 조상의 유골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차라리 인간과의 공통 조상에서 분리된 뒤 그들만의 특수한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게 나았다. 두 사람은 이제껏 거꾸로 된 질문을 한 것이었다. 왜 인간 조상은 발 중간 부위가 길어졌는가가 아니라, 반대로 물어야 했다. 왜 그리고 어떻게 현생 유인원들은 발 중간 부위가 짧아졌는가? 마찬가지로 사람 발가락이 왜 짧아졌는가가 아니라 침팬지 조상의 발가락이 왜 길어졌는지를 물어야 했다.

p. 572. "우린 화이트가이 섭씨 42도의 환경에서 30년간 버티고 살아남은 용기 있는 사람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