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논문

앨리슨 벡델, <펀 홈 : 가족 희비극>

밭 벼 2022. 9. 29. 00:39

앨리슨 벡델, 움직씨, 2018, <펀 홈 : 가족 희비극>

 

펀 홈 : 가족 희비극 (페이퍼백)

2017년 버몬트 최고 만화가상 수상자인 앨리슨 벡델의 첫 베스트셀러 그래픽 노블이자 영문학사에서 성취를 획득한 회고록이다. 출판되자마자 타임, 뉴욕타임즈, 피플, USA 투데이, 로스엔젤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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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희극과 비극을 가르는 선은 가늘다. 책은 Family Tragicomic이라고 소개되는데, 어느 페이지에서도 웃지 못했다.

'나'의 유년기. 아버지는 집을 꾸미는 데에 집착했다. 어머니는 학위와 연극에 열중했다. 집은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고, 그래서 펀 홈(Funneral Home)이다. 아버지는 장의사였고, 근사한 서재를 가지고 있었다. '나'가 '동성애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편지로 알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아버지가 트럭에 치여 죽었다. 자살일까 사고일까?

'나'는 일기를 열심히 썼다. 혼자 볼 일기를 쓰면서,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인가부터 '아마'라는 단어 없이는 단어 하나도 연결하지 못하게 되었다. 일기장은 '아마'로 가득찼다. 나중에는 '아마'를 계속 반복하며 쓰는 것이 번거로워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기호를 만들어냈다.

아버지와 같이 간 식당에서 남성복을 입고, 남성의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을 보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젊은 아버지가 여성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봤다.

 


'동성애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편지에 어머니는 동성애에도 억압과 착취는 있지 않겠느냐는 장문의 편지를 했다. 몇 차례의 편지를 더 주고 받아 겨우 어머니와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남자들과 있는 것을 들키기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는 완벽히 도치된 삶을 살았다. '나'가 삶의 기쁨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죽었다.

매우 정성껏 번역된 책이다. 이렇게 애정을 담은 각주와 편집은 처음 본다. 아름다운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p. 91. 어찌 보면 개츠비의 손때조차 묻지 않은 새 책과 아버지의 닳고 닳은 헌책이 의미하는 바는 같다. 책 주인이 실제보다 허구를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p. 104. 아버지와 나는 그냥 도치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도치였다. 내가 아버지의 남자답지 않은 무언가를 배우려고 했다면, 아버지는 나를 통해 여성스러운 뭔가를 표출하려 했다. 서로가 목적이 엇갈린 전쟁이었다. 당연히 끝없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p. 126. 사진 속 아버지는 여자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친구들과 장난쳤던 것일까? 하지만 포즈를 취한 아버지 모습엔 점잔 빼거나 우스워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날렵하고 우아해 보였다. 또 다른 사진에선 스물 두 살의 아버지가 방수포를 깐 학생회관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겼다. 사진 찍어 준 남자는 아버지의 애인이었을까? 내 스물한 번째 생일날 건물 비상구 앞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준 여자가 내 애인이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