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닉 프리스비, <세금의 세계사>
도미닉 프리스비, 2022, 한빛비즈, <세금의 세계사>, 원제 : Daylight Robbery(2019)
세금의 세계사
영국의 금융 전문 작가이자 저자인 도미닉 프리스비는 세금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좌우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단언하며, 세금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강조한다. 세금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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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을 쓰려면 무엇인가에 미쳐야한다던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단연 탁월하다. 인간의 모든 면면에서 세금을 발견하고, 인류 역사의 모든 굴곡점에서 세금의 역할을 찾아내니, 저자는 책 한 권이 모자라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책은 (저자에 따르면) 세금을 계기로 등장한 세계사의 주요한 장면들을 소개한다. 세금은 혁명의 계기가 되며, 전쟁의 계기다. 역설적으로 세금이 있어야 혁명도 가능하고 전쟁도 가능하다. 그 유명한 로제타석도 세금 제도의 개편을 알리는 비석이다.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평화가 찾아왔으니 세금을 전액 또는 일부 감액하는 경기부양책을 사용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다시 돌아오자. 저자에게 세금은 역사를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1690년대 초반. 영국에는 굴뚝세가 있었다. 세금징수관들은 사적 공간에 들어가 굴뚝의 수를 셌고, 사람들은 이게 못마땅했다. 굴뚝세에 대한 불만이 1688년 명예혁명으로 이어진다. 놀랍지 않은가.
당연히 명예혁명 이후 굴뚝세는 폐지된다. 대신 다른 세금이 등장하는데, 이름하여 창문세다. 창문의 수만큼 세금을 징수한 것. 창은 집 밖에서 셀 수 있으니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도 않는다. 이에 창문이 없는 집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있는 창문도 나무를 덧대어 가리기 시작한다. 집에 빛이 안 들고 환기가 안 된다. 때는 바야흐로 18세기 산업혁명기. 필사적으로 창문을 없앤 결과는 발진티푸스, 홍역, 콜레라였다.
창문세와 같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매우매우 많으니 에피소드 다큐멘터리 보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다. 이야기는 홍콩의 부상,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미국 남북전쟁, 나치의 등장과 2차세계대전 등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를 아우른다.
다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구간은 책의 긴 대단원의 마지막을 달리는 마지막장. 현실성이 없다보니 저자 스스로도 계속해서 본인의 '유토피아'임을 강조한다. 그의 유토피아에서 세금은 국가 채무와 인플래이션까지 고려하여 15% 수준을 유지한다. 대신 입지이용세를 도입한다. 토지의 가치상승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토지의 가치 상상분을 모두가 공유한다. 이거, 개발이익환수와 비슷하잖아! ...아무래도 헨리 조지를 다시 읽어야겠다.
갑작스럽게 헨리 조지로 마무리되는 이 책은.. 세계사 덕후이거나 덕질 자체를 흥미로워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딱이겠다. 세금을 알고 싶다면 ... 다른 길이 있을 듯 하다.
p. 12. 산업혁명기에 도심지에 유행했던 여러 전염병 중에서 특히 발진티푸스, 홍역, 콜레라는 좁고 축축하며 창문 없는 집에서 더욱 창궐했다. <랜싯>은 창문세를 "질병의 직접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p. 186. 평시에는 재선에 영향을 줄까봐 정치인들이 쉽사리 세금을 못 올리지만 "전쟁이 나면 상황이 달라지고" 새로운 항목의 세금과 높은 세율이 한번 도입되면 웬만해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국가의 소득세는 비참전 국가의 소득세보다 여전히 높다.
p. 300.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세금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유한 토지의 입지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나는 이를 입지이용세라 부르겠다. 이것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세금이며, 노동에 집중되는 세금을 자본으로 돌림으로써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