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법, 망공정성으로 대체한 망중립성
바이든 정권의 등장과 함께 미국 사회에서 망중립성이 정책적 가치로 재부상하고 있다. 이에 한국사회 망공정성 논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망중립성 논의는 '망공정성 논의'로 대체되었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 법'이다. 지난 5월 통과되어 12월 발효된 ‘넷플릭스 법’은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액이 발생했거나, 또는 다수의 이용자를 확보함으로써 트래픽이 발생한 CP에게 망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매출액이 많이 발생했으니 그에 따른 합당한 공익적 책무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망공정성 논의'의 결실이다.
판단하건대,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망중립성 논의는 그것이 과연 ISP와 CP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유도할 것인지 보다는 그것이 과연 ‘공정한가’를 둘러싼 논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망공정성 논의’는 다음의 두 가지를 목적으로 한다.
1. 망공정성 논의의 목적
1) 국내 사업자 역차별 개선
망공정성 논의는 국내 사업자만 한국 ISP에게 접속료를 내고 있어 역차별을 겪고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 2015년 상호접속고시 개정의 취지 중 하나가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을 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해외 CP 역시 국내 CP와 마찬가지로 해외 ISP에 최초 접속할 때 접속료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며, 일차적인 접속 후 데이터의 이동은 완전히 ISP 간 계약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즉, 한국의 CP는 한국 ISP에게, 미국의 CP는 미국 ISP에게 접속료를 낸다. 이후 미국-한국 간 데이터의 이동은 ISP 간의 연결 문제다.
그러나 망공정성 논의는 국내 사업자는 국내 ISP에 접속료를 내는데 해외 CP는 국내 ISP에 접속료를 내지 않으니 차별이라 주장한다. 다시 확인하자. 해외 CP는 해외 ISP에 접속료를 지불한다. 이후 데이터 이동은 ISP 간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언론은 국내 사업자가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이 보도 프래임을 굉장히 선호한다.
2) CP의 망품질 유지 의무 요청
‘세계 최초 5G 상용화’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통신망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시대에 망품질 유지는 마치 한국 사회의 혁신 성장 동력을 담보하는 공익적 활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국가의 성장 동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CP 역시 비용을 분담해야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5G 시대에는 비용의 일방적 전가를 야기하는 정책보다는 변화된 환경을 고려하여 수익과 비용의 배분에 공정하게 기여하도록 하는 망 공정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용 : 제1회 <인터넷 상생발전 협의회 결과보고서> 중)
결국 망공정성 논의는 위의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접속고시의 개정을 이뤄냈다. 두 개의 가치 모두 ‘한국 기업’, ‘한국의 경제 성장’이라고 하는 국가 공동체를 앞서 세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선도로 그 효과가 강화된다.
2. 망공정성 논의의 특징
망공정성 논의는 망중립성과 달리 다음 세 가지의 특성을 보인다.
1) 혁신적인 사업자에 대한 페널티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망중립성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망중립성을 폐지해야 더 많은 전송량을 요구하는 콘텐츠에 대해 우선회선을 제공하여 더 많은 데이터 처리를 요하는 신규 콘텐츠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회선(First Lane)’은 일종의 상품으로, 망중립성 폐지 담론은 데이터 처리 속도에 민감한 콘텐츠를 유통해야 하는 CP 입장에서는 ISP와의 계약을 통해 ‘우선회선’이라는 통신 상품을 판매-거래 할 수 있는 시장이 나타나게 됨을 뜻한다. 이 시장에서는 당연히 거래에 앞서 ‘우선회선’ 상품의 품질에 대해 상호 확인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망공정성 논의는 우선회선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현재 상호접속고시를 비롯한 망공정성 논의에서는 CP가 우선회선 구매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ISP가 CP의 콘텐츠를 얼마나 빠르게 우선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CP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현행 상호접속 고시는 일정 수준 이상 트래픽을 발생시킨 CP가 통신사에게 돈을 지불할 것을 명시한다. 발생된 트래픽을 보다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통신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영업이 성행하여 콘텐츠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부담해야하는 페널티다.
이러한 패널티는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CP는 국내 통신 3사와의 망사용료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홍콩, 또는 일본에 서버를 두고 한국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회 전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또한 이용자 후생 감소를 야기한다.
2) ISP와 CP 간 관계가 아니라 해외 사업자와 국내사업자 갈등 구도로 해석한다
어떤 ISP도 CP의 콘텐츠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인터넷의 태생적 가치이자 정책적 가치로 자리잡은 망중립성은 ISP와 CP 사이의 관계를 규율한다.
그러나 한국의 망공정성 논의는 흔히 네이버, 카카오는 내는 망사용료를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은 내지 않고 있다는 국내 CP와 해외 CP 간 갈등 구도로 바꿔버린다. 실제 이해관계의 충돌은 ISP와 CP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인터넷 환경에서 시장 획정은 국내로만 한정되기 어렵다. 나아가 국내 시장에서의 논리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범과 불일치할 경우 거래비용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국내 CP, 해외 CP라는 표현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미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는 국내 CP인가? 한국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튜브는 해외 CP인가? 망공정성 논의는 국내-해외라는 상상 속 역차별을 만들어낸다.
3) CP를 망품질 관리 주체로 상정한다
망품질의 관리는 망설비를 가지고 있는 ISP가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망설비를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닌 CP가 망품질 관리 책무를 가져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 나아가 CP가 망품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다뤄지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3. 토종 OTT 잡는 넷플릭스 법
위에서 확인한 바, 넷플릭스 법의 등장에는 망공정성 논의가 자리하고 있다. 상호접속고시는 인터넷 생태계의 경쟁과 투자가 활발해지고 혁신적인 신규 사업자가 등장하는 것 보다는 망설비 유지에 따른 ISP의 부담을 경감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넷플릭스 법의 실상은 국가 공동체를 위한 공정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수사 속에 감춰졌다.
넷플릭스 법의 개정으로 인해 국내 CP에 대한 규제만 강화된 형국이 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위해서도 CP가 콘텐츠 경쟁력을 기르는 것을 저해할 여지가 크다. 망사용료 부과는 CP들로 하여금 트래픽 발생에 대한 페널티로 작동할 것이다. 해외 OTT 사업자에 필적할 만한 국내 OTT 사업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 방향과도 모순된다. 대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유통할 수 있는 OTT 사업자를 육성한다고 하나, 정작 콘텐츠 혁신을 통해 이용자가 늘어나고 데이터 유발이 늘어나게 되면 망사용료를 추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현재 넷플랙스 법은 CP의 망품질 유지 의무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을 뿐 CP에게 우선회선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ISP가 CP의 콘텐츠를 얼마나 빠르게 우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나아가 CP의 망설비 투자가 오히려 콘텐츠 이용량을 늘려 망사용료를 더 많이 내야하는, 망설비 투자에 대한 마이너스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 법은 해외 CP의 망품질 의무를 부과하기는 커녕 토종 CP의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