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논문

에드워드 버네이스 <프로파간다>

밭 벼 2020. 9. 12. 18:00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2009, 공존,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

괴벨스가 탐독하고 촘스키가 극찬한 선전과 홍보의 고전. 광고와 퍼블리시티를 포괄하는 개념인 PR은 20세기 초에 미국의 아이비 레드베터 리(Ivy Ledbetter Lee)와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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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커버 속 여성분의 뒷모습이 너무 예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진은 Wynn Richards의 Woman with Cigarette 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프로파간다 하면 흔히 나치 독일의 괴벨스를 떠올리지만 흥미롭게도 국가적 차원에서 선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미국이 독일보다 앞섰다. 1차대전에 참전할 명분이 필요했던 우드로우 윌슨은 연방공보위원회(United States on Public Information)을 만들고 위원장에 조지 크릴(George Creel)을 앉혔다(그래서 연방공보위원회는 크릴위원회라고도 불렸다). 이들의 임무는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애국의 기치 하에 전쟁을 지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여기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히틀러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처뿐인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참상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국가의 프로파간다에 속았다고 생각했다. "프로파간다"라는 표현 자체에 거짓과 위선, 선동의 의미가 뒤섞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훌륭한 PR 실무자였던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이것이 못내 안타까웠나보다. 그는 "프로파간다"를 구원하고 싶어했다. 대통령 직속 홍보수석(Secretary of Public Relations)의 신설도 주장했다. 그리고 본인을 Public Relationship Counsel이라는 새로운 '전문직'의 위상으로 올려놓고 싶어했다. 

 

 

버네이스는 프로파간다가 민주주의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증기기관, 인쇄매체, 공립학교라는 '산업혁명의 삼총사'로 인해 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으로 똑똑해졌고, 신문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왕이 모든것을 정하던 사회에서, 경쟁을 통해 진리를 골라내는 사회로 옮겨왔다. 새로운 사회에서 국가, 기업, 사회운동, 예술 등은 모두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한다. 따라서 대중의 생각을 조종하는 선전 능력이 중요해진다. 버네이스는 이러한 선전 활동이 불가피하며, 다만 선을 위해 활용되어야 할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전문직 주의가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는 지식과 윤리를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란,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지식(진리)을 갖추었을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대중을 위해 활용하는 자이다. 의사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생각해보라. 의학지식을 갖춘 자가 그의 지식으로 누군가를 해한다면, 우리는 그를 범죄자라고하지 의사라 하지 않는다. 버네이스가 생각한 선전가는 공평무사해서, 의뢰인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선전활동에도 윤리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1920년대 담배 회사의 매출을 드라마틱하게 올린 장본인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는 담배의 폐해를 알았더라면 담배 광고를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1960년대 들어 담배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노력했다.)

 

 

그의 행적이 어찌했든, 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재미있는 점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버네이스의 고민이다. '인쇄기와 신문, 철도, 전화, 전신, 라디오와 비행기 덕분에 아이디어가 빠르게' 유통되는 상황에서 사회는 어떻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인가. 대중은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가 SNS, 유튜브로 검증 없이 빠르게 유통되는 가짜뉴스를 걱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코로나와 가짜뉴스,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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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솔루션은 전문직주의, 엘리트주의적이다. 대중은 '중요한 정보를 골라서 알려줄 것'을 정치 엘리트에게 위임했다. 따라서 대중의 생각과 동향을 분석해 정부에 알려줄 수 있고, 정부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데 정통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안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선전이 필요하다. "엘리트가 알고 있는 것과 대중이 알고 있는 것 간의 간극을 좁히는 전문성" 그것이 버네이스가 생각한 선전가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접근이 완벽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가짜뉴스를 잡겠다며 '가짜뉴스 법'을 만들고 포털과 언론사를 어떻게든 처벌해보려고 하는 움직임보다 훨씬 낫다. 버네이스는 선전가였고, 전문가를 자칭했으며, 스스로의 윤리성 회복을 위해 행동했다(따지고보면 정치인도 언론인도 아닌데 그러하였다!). 지식과 정보의 힘을 이해하고 진실이 유통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윤리적 약속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 p. 131 "선전가의 활동에는 공평무사한 측면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의뢰인의 이익과 다른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고문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 p. 92 "선전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책무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지고 있다. 미국의 진보와 발전은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이들 소수 집단의 활발한 선전활동에 달려 있다."

 

 

  • p. 196 "교육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부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말의 의미를 학술 차원에 국한시켜서는 곤란하다. 여기서 교육이란 새로운 환경 조성을 통해, 중요한 행사와 사안의 의미 부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계몽된 형태의 선전을 말한다. 따라서 미래의 정치인은 중대한 정책에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한편, 정확한 이해와 정보 활동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계층으로 이루어진 유권자라는 거대한 집단을 조직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